2009년 11월 25일
知行竝進
요새 지행병진(知行竝進)이라는 말이 자주 떠오른다. 지행합일(知行合一)과는 다른 개념이다. 나는 지행합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나는 지행합일을 아는 것은 곧 행동하는 것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지행합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혹은 어느 수준의 의무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기계적 지행합일은 맥락으로부터 어긋나고 분위기를 저해시키는 요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좀 딱딱한 인간으로 비춰지기도 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지행합일 하는 게 뭔가 긴장되고 머리를 쓰게 하는 것이어서 나를 불편하게 했다.
지행병진은 앎과 행함이 함께 나아간다는 뜻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 앎에 진실된 마음을 통해 자신을 바쳐 진정한 자신의 것이 된다면 행함은 나도 모르게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앎과 행함 사이에 일정한 완충지대(또는 buffer)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완충지대를 지나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앎이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행합일과 지행병진의 의미가 왕양명이 설명한 바로는 너무 깊고 심오해서 나는 그 깊이를 다 알지 못하지만 추상적으로 이해한 바는 그러하다.
바로 써먹고싶은 지행합일이라면 궁극적으로 자신의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고 자기 앞에 나타난 존재들을 수단화 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앎 자체에 자신을 바치는 지행병진이라면 자신이 처한 맥락 속에서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 속에 그 앎을 편안하게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여태껏 바로 써먹고 싶은 조바심에 나는 뭔가 많이 공부한 것 같은데 다 까먹은 기분이다. 지금이라도 이런 걸 깨달아서 다행이다. 왜 내가 무언가를 바로바로 써먹고 싶은 조바심을 가져 왔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싶다.
지행병진은 앎과 행함이 함께 나아간다는 뜻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 앎에 진실된 마음을 통해 자신을 바쳐 진정한 자신의 것이 된다면 행함은 나도 모르게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앎과 행함 사이에 일정한 완충지대(또는 buffer)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완충지대를 지나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앎이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행합일과 지행병진의 의미가 왕양명이 설명한 바로는 너무 깊고 심오해서 나는 그 깊이를 다 알지 못하지만 추상적으로 이해한 바는 그러하다.
바로 써먹고싶은 지행합일이라면 궁극적으로 자신의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고 자기 앞에 나타난 존재들을 수단화 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앎 자체에 자신을 바치는 지행병진이라면 자신이 처한 맥락 속에서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 속에 그 앎을 편안하게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여태껏 바로 써먹고 싶은 조바심에 나는 뭔가 많이 공부한 것 같은데 다 까먹은 기분이다. 지금이라도 이런 걸 깨달아서 다행이다. 왜 내가 무언가를 바로바로 써먹고 싶은 조바심을 가져 왔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싶다.
# by | 2009/11/25 12:59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