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28일
가부장주의가 다시 뜰 것.
가부장주의가 다시 뜰 것 같다. 그것도 예전 의미의 가부장주의가 아닌 새로운 의미의 가부장주의가 뜰 것 같다. 이 새로운 가부장주의는, 기존의 가부장 주의 - 그래도 왠만한 가부장들은 다 대접받고 가부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것 - 와는 좀 다르다. 가부장 내에서도 이중적인 구조가 나타날 것이다. 가부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부장과, 그렇지 못한 가부장. 원래 이런 구조가 있긴 했던 것 같은데, 앞으로 더 고착화 될 것 같다. 예전의 가부장주의가 규범적이고 이념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앞으로의 가부장주의는 뭔가 먹고살기 편한 것을 상징하는 의미를 띨 것이다.
여성들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90년대 들어서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경제력이 많이 신장됐다. 그래서 가부장주의도 다소 누그러졌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그런 경향이 퇴조되는 것 같다. 고시나 주요 전문직 등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과거보다 활발해 지긴 했지만 내가 봤을 때 이는 큰 경향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결혼 정보업체에 가입하는 여성들의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구조조정 하면 우선 퇴출되는 대상이 여성이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 당한 실직자들 중에서 97%가 여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하지도 않는 일을 힘들게 하면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 남자 잘 만나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사는 게 더 낫게 된다. 최선책이 어려워 차선책을 선택 한다기 보다는 최악을 면하기 위한 선택이 이뤄질 것이다. 나는 요즘 내 주위의 고학력 여성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합리적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서(그 기준을 내가 인정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한국에서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는 크게 히트를 쳤다. 그 드라마의 결론은 신데렐라 컴플렉스와는 동떨어졌지만, 그 드라마가 시청자들(특히 여성들)로 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목들은 대부분 신데렐라 컴플렉스 스러운 내용 들이었다. 형식상 그런 결말을 만들어낸 것 같다. 외부의 제도적 시선이 쉽게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그런 말 하기가 좀 뭣 하긴 하지만, 전해들은 바로는 그런 것 같다.
그런 가부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남자는 한국에 많지 않다. 조기퇴직, 각종 질병, 배경 없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사교육비와 집값, 그리고 각종 물가의 상승 등이 그 이유가 된다. 그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남자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일단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면 - 인터넷, TV, 신문 등 - 그런 것들에 대한 내용이 많다. 여자들이 남자들에 기대하는 것과 실제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mismatch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랑과 결혼은 다른 차원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지 않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사랑과 결혼은 다르다는 말이 더 심화되고 있고 더 심화될 것이다. ideal한 가부장은 대접받고, ideal하지 못한 가부장은 대접받지 못할 것인데, 이 두 종류의 가부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동일할 것이며 그 요구를 수행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뭐 옛날에도 그랬지만, 이제는 더 손 쓸 겨를조차 없게 심해질 것 같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를 구성하는 기준이 의미를 추구하는 것에서, 다만 편하고 안정되고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한 예측가능성이 담보되는 것으로 변해서 생긴 일들이다. 여자들과 남자들을 너무 큰 틀에서 싸잡아 판단하는 글을 쓴 것 같아 졸필이긴 하지만, 나는 분명 그런 것들을 느낀다.
여성들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90년대 들어서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경제력이 많이 신장됐다. 그래서 가부장주의도 다소 누그러졌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그런 경향이 퇴조되는 것 같다. 고시나 주요 전문직 등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과거보다 활발해 지긴 했지만 내가 봤을 때 이는 큰 경향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결혼 정보업체에 가입하는 여성들의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구조조정 하면 우선 퇴출되는 대상이 여성이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 당한 실직자들 중에서 97%가 여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하지도 않는 일을 힘들게 하면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 남자 잘 만나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사는 게 더 낫게 된다. 최선책이 어려워 차선책을 선택 한다기 보다는 최악을 면하기 위한 선택이 이뤄질 것이다. 나는 요즘 내 주위의 고학력 여성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합리적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서(그 기준을 내가 인정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한국에서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는 크게 히트를 쳤다. 그 드라마의 결론은 신데렐라 컴플렉스와는 동떨어졌지만, 그 드라마가 시청자들(특히 여성들)로 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목들은 대부분 신데렐라 컴플렉스 스러운 내용 들이었다. 형식상 그런 결말을 만들어낸 것 같다. 외부의 제도적 시선이 쉽게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그런 말 하기가 좀 뭣 하긴 하지만, 전해들은 바로는 그런 것 같다.
그런 가부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남자는 한국에 많지 않다. 조기퇴직, 각종 질병, 배경 없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사교육비와 집값, 그리고 각종 물가의 상승 등이 그 이유가 된다. 그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남자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일단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면 - 인터넷, TV, 신문 등 - 그런 것들에 대한 내용이 많다. 여자들이 남자들에 기대하는 것과 실제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mismatch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랑과 결혼은 다른 차원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지 않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사랑과 결혼은 다르다는 말이 더 심화되고 있고 더 심화될 것이다. ideal한 가부장은 대접받고, ideal하지 못한 가부장은 대접받지 못할 것인데, 이 두 종류의 가부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동일할 것이며 그 요구를 수행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뭐 옛날에도 그랬지만, 이제는 더 손 쓸 겨를조차 없게 심해질 것 같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를 구성하는 기준이 의미를 추구하는 것에서, 다만 편하고 안정되고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한 예측가능성이 담보되는 것으로 변해서 생긴 일들이다. 여자들과 남자들을 너무 큰 틀에서 싸잡아 판단하는 글을 쓴 것 같아 졸필이긴 하지만, 나는 분명 그런 것들을 느낀다.
# by | 2009/06/28 13:33 | ┏思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